신선미의 한복유희: 동양화의 매력 [화집]

가끔은 제목만 봐도 마음이 끌리는 책이 있잖아요. 신선미 작가님의 한복유희가 저에게는 딱 그런 책이었어요. 이 화집을 펼치기 전부터 이미 그 특유의 섬세하고 포근한 한국화 그림체에 매료되어 있었거든요. 전통적인 동양화 기법으로 우리 일상의 가장 사적인 순간들을 담아냈다는 점이 정말 신선하고 흥미롭다, 싶었답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는 한복을 특별히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어요. 그런데 작가님의 그림 속 한복은 정말이지 너무 예쁜 거예요. 단아한 곡선이며, 곱게 물들인 듯한 색감, 그리고 그 한복을 입고 우리의 삶을 살아가는 그림 속 인물들의 모습이 전통과 현대를 너무나 자연스럽게 이어주고 있죠. 한복이 그저 특별한 날 입는 의복이 아니라, 평범한 하루 속에서 빛나는 예술이 될 수 있구나, 하고 새삼 깨닫게 해준달까요.

이 책의 핵심이자 가장 매력적인 설정은 바로 개미 요정들이에요. 작가님이 어릴 적 아플 때 봤다는 그 작은 존재들 말이에요. 어른이 되어서는 보이지 않게 된 이 요정들이,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다시금 상상 속에서 소환되는 그 과정이 참 따뜻하고 공감돼요. 아이를 통해 나의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는 경험은 아마 모든 부모가 한 번쯤 해봤을 겁니다. 작가님은 이 보편적인 경험을 개미 요정이라는 환상적인 소재와 전통 한국화로 절묘하게 엮어냈죠.

개미 요정들에게는 평범한 실타래나 우표, 심지어 재봉틀까지도 거대한 놀이터이자 흥미로운 세상이 됩니다. 이 작은 친구들이 사람들의 물건을 자기들 방식으로 활용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영국의 동화 마루 밑 바로우어즈가 생각나기도 하더라고요.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간의 상상력 속에는 이렇게 작은 존재들이 숨 쉬고 있는 것 같아요. 우리 아들이 인형 친구와 소곤거리는 모습을 볼 때처럼, 개미 요정들의 이야기는 어린 시절의 순수한 상상력을 오래도록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해요.

특히 당신이 잠든 사이나 육아일기 테마의 그림들은 마치 제 일기장을 훔쳐보는 것 같은 기분이었어요. 잠시 눈을 붙인 엄마 옆에서 얌전히(?) 놀고 있는 아기, 눈만 떼면 사고 치는 호기심 가득한 모습, 그리고 그림마다 늘 등장해서 웃음과 공감을 주는 고양이까지. 전통적인 채색화 속에 현대적인 육아 용품이나 스마트폰 같은 요소들이 슬쩍슬쩍 비치는 것도 작가님의 유머 감각이 느껴지는 부분입니다. 너무나 우아하고 단아한 그림인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위트가 가득하다는 게 이 화집의 큰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화집의 구성도 참 재미있어요. 전체적으로 여섯 개의 큰 주제로 나누어져 있는데, 특히 개미 요정과 관련된 그림들은 비슷한 구도나 소재를 한복 색깔만 바꾸거나 미세한 각도 변화를 주어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경우가 많거든요. 저는 처음엔 왜 비슷한 그림이 많지? 싶었는데, 계속 보다 보니 이 반복 속에서 미묘한 감정의 변화나 시간의 흐름을 읽어내는 즐거움이 있더라고요. 같은 일상도 매일매일이 다르듯 말이에요. 반복 속에서 새로움을 찾아내는 작가님의 섬세함이 돋보입니다.

마지막 부분에는 한국의 전통 문양을 개미 요정으로 표현한 패턴 그림들과 한중일 세 나라의 전통 복장을 한 여인들을 그린 웰컴 시리즈도 실려 있습니다. 전통 문양을 개미 요정들이 완성하는 모습은 정말 귀엽고 창의적이죠. 웰컴 시리즈는 나라 간의 평화와 화합을 바라는 작가님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져서 좋았습니다. 그림에 등장하는 거문고, 가야금 같은 전통 악기들의 묘사도 실제 같아서 눈이 즐거웠어요.

책의 뒷부분에는 그림 속에 등장하는 한복, 악기, 문방우 등 한국 전통문화 요소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한영 병기로 실려 있어서 외국인 친구에게 선물하기에도 손색이 없을 것 같아요. 우리 문화의 아름다움과 육아의 소중한 순간들을 이렇게 멋진 동양화로 담아냈다는 점만으로도 소장 가치가 충분한 책이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마음이 포근해지는 그림 속에서 한참 동안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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